단상. 자동화에 가려진 빈자리

[Prologue]

노션에 구글 캘린더를 연동해 보고, GPTs를 세팅해서 챗봇도 만들어 보고, 아침마다 관심 분야의 정보를 취합해 주는 뉴스레터도 만들고 있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.

'이러다 연동되는 사이트들 중 하나라도 이슈가 생긴다면?'

얼마 전 집 앞 전신주의 변압기가 터져서 아파트 단지가 2시간 동안 정전된 적이 있었다. 비상발전기가 잘 작동돼서 엘리베이터는 문제 없었지만, 집에 있는 모든 전자제품은 out.

아이들은 당연히 처음 겪는 상황이었다. TV도 안 나오고, 냉장고도 안 돌아가고. 인터넷 공유기도 안 되니 wifi도 안 되고, 정수기도 물이 안 나오고, 화장실 전구도 안 들어오니 세상이 망한 느낌이었다고 한다.

우리 부부는 어렸을 적 늘 겪던 일이라 서랍에서 후레쉬 꺼내고, 혹시나 몰라 쟁여둔 생수를 창고에서 꺼내 놓았다. 우리 세대에 정전과 단수 이슈는 일상이었으니까.

정전된 거실 바닥에 켜진 손전등이 작은 빛 웅덩이를 만들고 옆에 2리터 생수통이 놓여 있다. 까만 화면의 TV와 어두운 소파가 보이는 흑백 펜화. 자동화 이전, 단절이 일상이던 시대의 풍경.

[그땐 흔했던 단절]

404 Not Found.

사설 서버일수록 일명 404 화면을 보여 주는 경우가 많았고, 내 인터넷 환경이 안 좋은 경우도 많아서 접속 지연으로 저 화면을 보기도 했다. 현재는 안정적인 서비스를 위해 서버를 분산시키고, 안정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제1원칙이 되어 요즘에는 보기 힘든 화면이 되었다.

단절이 기본값이던 시절이 있었는데, 어느새 우리는 단절을 잊고 산다.


[지금의 자동화, 그리고 빈자리]

업무 자동화가 시간 단축과 쾌적한 업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건 확실하다. 반복되는 작업과 규칙적인 흐름에 더 이상 인적 자원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.

그런데 안정적으로 3~4년 잘 굴러가던 자동화의 어느 한 마디가 끊어진다면?

당장 보고서를 써야 하는데, 자료를 어디서 어떻게 수집해 왔는지 루트가 바로 기억날까. 고객 CS를 해야 하는데 경험 많은 시니어가 휴가 중이라면, 자동화에 기대 있던 직원이 진땀을 흘릴 것 같다.

그러면 잔소리쟁이 대표가 "그러게 그런 거 믿는 거 아니다"라며 한마디 보탤 것이고, 자동화 비율이 높았던 누군가가 가장 먼저 타깃이 될 뿐.


[내가 쓰던 방식]

나는 엑셀시트 구석이나 파워포인트 바깥, 포토샵과 피그마의 인쇄되지 않는 영역, 사용 프로그램의 출력되지 않는 레이어로 주석을 달아 놓는 편이었다.

책상 위에 닫힌 노트북, 손글씨 워크플로우가 적힌 종이, 포스트잇 두 장과 펜이 놓여 있는 흑백 펜화. 자동화에 가려진 빈자리를 채우는 아날로그 백업 메모의 풍경.

업무 맥락을 위해서, 누군가 후속 작업을 하다가 나에게 찾아와서 묻는 게 귀찮아서, 협력업체가 딴소리하는 게 싫어서였다.

만약 내가 회사에서 업무 자동화를 추진한다면 백업 전략을 먼저 세워 놓고 진행할 듯하다. 워크플로우를 서류화한다거나, 베이스 자료 사이트 링크 목록을 레퍼런스 폴더에 넣어 두거나, 암묵지로만 알고 있는 고객 응대 매뉴얼을 체계화하는 식으로.


이 짧은 생각들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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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삽화 생성 프롬프트]

이미지는 ChatGPT(무료 플랜)로 생성했습니다. 같은 톤으로 재현하고 싶으신 분을 위해 남겨둡니다.

이미지 1 — flashlight scene

Black and white pen-and-ink illustration. A quiet scene in a powered-down living room. A flashlight lies on the floor, casting a small round pool of light, with a 2-liter water bottle beside it. The dark blank screen of a TV is partially visible in the background. No people. Hand-drawn quality with slightly uneven pen strokes, light hatching, generous negative space. Style reminiscent of a New Yorker chapter illustration or essay book interior art. Black ink on textured paper, no color at all. Quiet, slightly melancholic but warm. 3:2 horizontal aspect ratio.

이미지 2 — desk scene

Black and white pen-and-ink illustration. A desk seen from slightly above at an angle. To one side, a laptop sits closed or with only the edge of its screen visible. In the foreground: two or three sticky notes, a pen, and a single sheet of handwritten notes — looking like a simple workflow with arrows and words, though the lettering is too faint to read. Paper objects emphasized over the digital device. Hand-drawn quality with slightly uneven pen strokes, light hatching, generous negative space. Style like a New Yorker chapter illustration or essay book interior art. Black ink on textured paper, no color at all. Calm with a touch of nostalgia. 3:2 horizontal aspect ratio.